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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 칼럼] 살인·강간 저질러도 의사면허 유지…현행 법, 이대로 괜찮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5.15 14:01

[에너지경제 칼럼] 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기고=조민근 안심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마왕이라고 불렸던 고(故) 신해철이 대중의 곁을 떠난 지도 3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을 둘러싼 각종 소송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고인의 유족들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집도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고인의 사망에 관해 집도의의 업무상 과실이 있는지 여부가 걸린 형사재판이 며칠 전 완전히 마무리됐다.

대법원 3부는 상고기각판결을 선고했고, 집도의에게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종전의 항소심 판결을 유지, 확정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30일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법정구속했기 때문에 가석방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집도의는 8개월여 뒤 석방될 것이다. 이와 같이 실형이 확정돼 복역한 후 출소한 의사에게 기존의 의사 면허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 제69조 및 같은 법 제33조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는다면 인정된 죄명이 무엇인지를 불문하고 선고된 형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나 선고유예에 불과한 경우에도 당연히 퇴직하게 된다. 변호사의 경우에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죄명을 따지지 않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그것이 실형인지, 집행유예인지, 선고유예인지를 불문하고 등록취소 사유가 된다(변호사법 제5조).

일견 의사면허가 유지되는지 여부도 위와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현행 의료법상 결격 사유는 △‘정신보건법’ 제3조 제1호에 따른 정신질환자(이마저도 전문의가 의료인으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하면 결격 사유가 아니다.)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한정치산자나 ‘형법’ 제233조, 제234조, ‘약사법’과 ‘모자보건법’ 등 여러 관련 법과 이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않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않은 자 등이다. 공무원이나 변호사의 경우 범죄 종류를 불문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때에는 자격을 박탈한 것과 다르게 의사는 범죄의 종류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범죄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의사 면허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의미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을 경우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 범죄는 형법상으로 허위 진단서 작성 및 행사죄, 낙태죄, 업무상 비밀누설죄, 허위 진료비 청구 또는 허위 의료보험금 청구 등에 따른 사기죄뿐이다.

나머지 범죄는 의료법이나 의료관련특별법 위반 등의 범죄들이다. 결국 살인이나 강간 등 불법성이 매우 큰 고의의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의사 면허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과 같이 업무상 과실치사가 제외된 것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 의료 행위를 권장하고, 실패한 의료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다시 ‘신해철 사건’으로 돌아가보면, 집도의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문제되는 죄명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기밀누설, 의료법 위반 등 모두 3개였다. 공소 사실 중 유죄로 인정된 것은 업무상과실치사뿐이고, 나머지 2개의 공소 사실은 무죄가 확정됐다.

확정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는 의료법 제8조에서 정한 결격사유가 되는 범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집도의는 의사면허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후 의료법이 개정돼 면허가 박탈되는 범죄의 제한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따라 집도의의 면허는 박탈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제도적 운용은 옳은 것일까. 의료 행위와 관련된 범죄만 아니라면 살인이나 강간 등의 강력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의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는데, 이는 의료인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관계기관의 심도 있는 논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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